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사람-충성
작성자
새생명
작성일
2020-08-15 22:41
조회
413
고린도전서에 보면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는 것입니다. “충성”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참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성, 나라 또는 임금에게 바치는 곧고 지극한 마음”입니다. 이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충성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한자로 충성 “忠(충)”자는 가운데 “中(중)”과 마음 “心(심)”이 합성된 것을 보면 충성은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온 행함임이 더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충성의 “誠(성)”자는 말씀 “言(언)”과 이룰 “成(성)”이 합해서 된 말씀입니다. 충성은 말한 바, 약속한 바를 꼭 이루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면 충성스러운 섬김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섬김도 사용을 하십니다. 복음의 감격이 없는 자들이 전도하여도 그것을 듣고 회심할 수도 있고, 은혜 가운데 있지 않은 사람이 설교를 해도 하나님께서 급하시면 그 설교를 통해서도 사람들이 은혜를 받게 만드시기도 하십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받은 감화는 말씀을 전하는 자의 인격과 말씀이 합치가 되어서 영향을 미친다 하면 최상이겠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고 당신의 백성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고 여기시면, 설교자를 능가하여 은혜를 주시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격과 섬김이 일치되지 않고 전하는 자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선포한 복음, 말씀과 괴리된 자신의 인격과 삶을 보면서 괴로워 할 것이며, 그 단계가 지나면 그 괴리감마저도 느끼지 못한 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지속하게 될 것입니다.
선배목사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60년대까지만 해도 폐질환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운명했을 때 장례를 치러야하는데 각혈을 한 흔적이 너무 처참하고 결핵균이 전염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에 가족들조차도 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목회자들이 염을 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충성스러운 본을 보고 감동을 받아 장례식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돌아오는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그런 일들을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시면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지막 때가 될수록 사람들은 세상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에 속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희박해 집니다. 그럴수록 마음의 진심을 드려 하나님을 섬기는 충성된 자들을 찾아보기가 더욱 힘들어 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가 악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잘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충성된 마음의 중심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자로 충성 “忠(충)”자는 가운데 “中(중)”과 마음 “心(심)”이 합성된 것을 보면 충성은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온 행함임이 더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충성의 “誠(성)”자는 말씀 “言(언)”과 이룰 “成(성)”이 합해서 된 말씀입니다. 충성은 말한 바, 약속한 바를 꼭 이루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면 충성스러운 섬김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섬김도 사용을 하십니다. 복음의 감격이 없는 자들이 전도하여도 그것을 듣고 회심할 수도 있고, 은혜 가운데 있지 않은 사람이 설교를 해도 하나님께서 급하시면 그 설교를 통해서도 사람들이 은혜를 받게 만드시기도 하십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받은 감화는 말씀을 전하는 자의 인격과 말씀이 합치가 되어서 영향을 미친다 하면 최상이겠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고 당신의 백성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고 여기시면, 설교자를 능가하여 은혜를 주시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격과 섬김이 일치되지 않고 전하는 자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선포한 복음, 말씀과 괴리된 자신의 인격과 삶을 보면서 괴로워 할 것이며, 그 단계가 지나면 그 괴리감마저도 느끼지 못한 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지속하게 될 것입니다.
선배목사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60년대까지만 해도 폐질환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운명했을 때 장례를 치러야하는데 각혈을 한 흔적이 너무 처참하고 결핵균이 전염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에 가족들조차도 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목회자들이 염을 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충성스러운 본을 보고 감동을 받아 장례식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돌아오는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그런 일들을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시면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지막 때가 될수록 사람들은 세상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에 속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희박해 집니다. 그럴수록 마음의 진심을 드려 하나님을 섬기는 충성된 자들을 찾아보기가 더욱 힘들어 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가 악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잘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충성된 마음의 중심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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